월요일, 12월 23, 2013

대사논쟁과 종교개혁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에 나서게 된 동기 가운데 하나로 대사(大赦) 문제를 꼽을 수 있습니다. 국내에 소개된 여러 역사책에는 대사를 '면죄부'로 표현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번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사의 유래 초기 교회에서 사도들은 어느 신자가 죄를 범하면 그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 단죄하여 쫓아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죄인이 죄를 고백하고 뉘 우치는 경우에는 하느님께 용서를 받고 교회 생활에 다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2세기 즈음에는 세례를 받은 후 죄를 범했을 경우 단 한번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박해시기를 거치면서 교회는 박해 때 배교했다가 참회한 신자들을 엄격히 단죄하기보다는 교회와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6세 기부터는 사제에게 죄를 개별적으로 고백하고 죄의 경중에 따라 속죄의 벌을 받는 보속과 개별 고해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보속의 방법이 매우 엄격했고 속죄 기간도 길어서 신자들이 보속을 다 이행하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았지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교회는 죽은 이들을 위해서는 살아 있는 신자 들이 대신 보속하는 대속을 시행하도록 허가했고 살아 있는 신자들에게 대해서도 장기간의 엄격한 보속을 완화해 주기 위해 기도와 성지순례 등의 신심행위 나 자선행위로 보속을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10세기쯤에 보속으로 다 갚지 못하는 벌(잠벌·暫罰) 에 대해 교황들이 일정한 조건을 부과하면서 사면해주는 대사가 시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사는 주로 교회나 가난한 이를 위한 헌금이나 선행들이었습니다.
물론 이 대사를 얻기 위해서는 진정한 참회의 정신으로 죄를 뉘우치고 고해성사를 보아야 했으며 속죄의 정신으로 희사나 선행을 실천해야 했습니다. 13세기에는 죽은 이들에게도 대사가 부여되기 시작했다.
대사가 남용되고 폐단이 생긴 것에 대해서는 교회가 부패하고 속화하면서 생겼다기 보다는, 세속적인 권력에 더 관심을 두었던 주교들이 교황으로부터 대사 권한을 부여받아 이 권한을 남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헌금을 받기 위해 '헌금통에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자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해방된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도 등장하였답니다.
이에 루터는 참회와 기도 희생 그리고 선행을 통해서가 아닌 돈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이런 악습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1517년 대사의 남용에 항의하는 95개 조항의 성명을 내걸었고 이것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죠.
이 대사 논쟁은 '오직 성경만으로' '오직 믿음만으로' '오직 은총만 으로'로 대표되는 루터의 신학 사상을 공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루터는 점점 더 자신의 입장을 완강히 내세우기 시작했고 이제는 대사의 폐습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는 수준이 아닌 자유의지, 원죄, 은총, 고해성사, 대사, 연옥, 교황의 수위권 등 교회의 핵심 교리들을 반대하는 차원으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1521년 루터를 비롯한 그 추종자들은 교회로부터 파문당하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출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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